어릴적 신문에서 유일하게 재밌는 부분은 4컷 만화였다.어려운 한자와 시사적 개념들 속에서 헤매는 어린 아이에게 만화는 유일하게 보고 즐길 수 있는 부분이었다. 4컷만화의 글귀를 화이트로 지우고 다른 글귀를 채워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때로는 우스워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중에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꼬맹이 시절 장난 놀던 그 4컷 만화가 「고바우영감」이란 걸 깨달았고, 그 위트와 촌철살인의 풍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6ㆍ25 당시 고등학생이었떤 김화백은 객관적인 눈으로 당시의 참혹해썬 상황을 여러 점의 수채화로 그려내고 있었다.
「피난 가는 돈암교 근처」는 흑백사진으로만 접하였던 당시 피난민의 모습을 색채감 있게 묘사하여 직접 경험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우마차를 타고 입성하는 인민군」은, 전쟁에 우마차까지 등장한 줄은 전혀 몰랐던 터라, 그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사람 중에 신속을 요하는 전쟁에서 우마차가 쓰였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밖에도 말로만 전해 듣던 '쌕쌕이 비행기'도 작품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많은 작품들 가운데, 아, 이건 단순한 기록화(記錄畵)가 아니라 걸작이다, 라는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었다. 「1950년 12월 10일 중공군 개입으로 불안해하는 시민」이 그것이다. 어두운 배경으로 전차불만 켜져 있는 도로에 회색 그림자를 드리우고 불안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자동차 라이트 빛 사이로 비친 얼굴과 도깨비불처럼 점점이 묘사된 전차불이, 비록 색채와 구도는 다르지만, 뭉크의 「불안(Die Angst)」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마도 인간의 근원적 불안은 서로 통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언·생각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술관에 간다는 것은 한 권의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0) | 2015.01.01 |
---|---|
예술가는 하나의 정치적 인물입니다. - 「잊혀진 전쟁, 현실의 분단」 (0) | 2015.01.01 |
논어와 법학 (0) | 2014.09.17 |
한국회화의 두 거장, 이중섭과 박수근. (0) | 2014.08.05 |
미술관에 가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0) | 2014.08.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