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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생각정리/책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명언 - 마음에 와닿는 구절 추천 - 뉴스보이코알라

by sunbykoala 202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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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대한 대화

사람들이랑 대화를 하다보면 감명깊게 읽은 책의 구절을 이야기 할 때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대학 때 민사소송법 시간에 교수님께서 권해주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시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책에 빠지게 됐습니다.

 

아래는 두서없이 감명깊게 읽은 구절을 모아 적어두었던 것을 온라인에 올려두려는 것입니다. 이따금 대화할 때 기억이 나지 않아 애를 먹은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심각해진다는 것이 반드시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슴푸레하게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죽음은 심각한 사실이었다. 나는 그런 숨막히는 배반성 속에서 끝없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확실히 기묘한 나날이었다. 삶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제2장 죽음과 마주했던 열일곱 살의 봄날 중에서…

자유가 아닌 방종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면 인간은 이따금 죽음을 생각하게 되곤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죽음에 대해 쓴 내용을 꼽씹어 보기위해 올려두어봅니다.

 

이봐, 기즈키, 여긴 정말 형편없는 세계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런 작자들이 버젓하게 대학에서 학점을 따고, 사회에 나가 부지런히 비열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얼마 동안은 강의엔 나가되 출석을 부를 때는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짓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학과 안에서의 내 입장은 한층 더 고립되어 갔다. 이름을 부르는데도 내가 잠자코 있으니까 강의실 안에는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가 감돌았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 또한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9월의 둘째 주에 이르러, 나는 대학교육이란 전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나는 대학 생활을 무료함을 견디는 훈련기간으로 삼기로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학을 그만두고 사회에 나가 뭔가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매일 학교에 나가 강의에 출석하고, 필기를 하고, 빈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자료조사를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제4장 피가 통하는 생기 넘치는 여자, 미도리 중에서…

대학 무렵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에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일종의 해결책 내지는 치료제 같은 역할을 했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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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고는 다른 여자에게 딱히 욕망을 느끼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유롭고 평온한 시간이었다. 정기적인 섹스의 기회가 확보된다면 더 이상 여자에게 원할 것이 없었다. 비슷한 나이의 여자를 사귀고 사랑에 빠지고 성적인 관계를 갖고, 그것이 필연적으로 몰고 올 책임을 떠안는 건 그가 그리 환영하는 바가 아니었다. 거쳐야 할 몇몇 심리적인 단계, 가능성을 은근 슬쩍 내비치기, 피하기 힘든 기대치의 충돌… … 그런 일련의 번거로운 것들은 가능하면 떠맡고 싶지 않았다.

책무라는 관념은 항상 덴고를 겁에 질리게 하고 꽁무니를 빼게 만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책무가 수반되는 입장을 교묘히 피해가면서 인생을 살아왔다. 복잡한 인간관계에 뒤엉키는 일 없이, 규칙에 얽매이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않고, 혼자 자유롭게, 아주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웬만한 불편은 참아낼 용의도 있었다.

책무에서 달아나기 위해 인생의 이른 단계에서부터 덴고는 자신을 눈에 띄지 않게 하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남들 앞에서는 능력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내놓고, 개인적인 의견은 입에 올리지도 않고, 전면에 나서기를 피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되도록 희박하게 하려 노력했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오로지 자기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만났다.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는 현실적인 힘이 없다. 그래서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뒤편 그늘에 한껏 몸을 낮추고, 뭔가를 단단히 붙잡아 날려가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런 계산은 언제나 머리 속에 넣어두고 살아야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I’
제20장 덴고, 가엾은 길랴크 인 중에서…

자기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남이 자신을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똑바로 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읽어도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늘 언젠가는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 문구가 많이 와닿은 구절이기도 합니다. 

 

덴고는 역을 향해 잠시 걷다가 역 앞의 ‘무기아타마 麥頭’라는 가게에 들어갔다. 그리고 생맥주를 주문했다. 술과 가벼운 안주를 내주는 가게였다. 작은 가게여서 손님이 스무 명쯤 들어서면 가득 차버린다. 전에 몇 번 이 가게를 찾은 일이 있었다. 심야 가까운 시간에는 젊은 치들로 북적거리지만, 일곱 시부터 여덟 시까지의 저녁시간에는 비교적 손님이 적어서 그 조용한 느낌이 좋았다. 혼자서 한 쪽 구석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기에 알맞다. 의자도 편하다. 이 가게의 이름을 어디서 따온 것인지,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점원에게 물어봐도 되겠지만, 덴고는 알지 못하는 사람과 그런 이야기를 잘하는 편이 못 된다.  게다가 가게 이름의 내력을 알지 못해도 그것 때문에 딱히 불편할 일도 없다. 그곳은 아무튼 ‘무기아타마’라는 이름을 가진 꽤 편안한 분위기의 가게다.

고맙게도 가게 안에는 음악은 흐르지 않았다. 덴고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칼스버그 생맥주를 마시고 작은 볼에 담긴 믹스너츠를 먹으며 아오마메를 생각했다. 아오마메의 자취를 더듬는 건 그 자신이 열 살 소년으로 되돌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의 크나큰 전환점을 다시 체험하는 일이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II’
제18장 덴고, 과묵한 외톨이 위성 중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학시절 정종이나 청하를 홀짝이면서 책을 읽었던 것도 이 부분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네요. 좋아하는 주종(술의 종류)은 다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크한 글쓰기에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벌벌 떨면서 침낭에 들어가 있으려니 가족에 둘러싸여 지내던 날들이 절로 생각났다. 딱히 그리워서 생각난 건 아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너무도 대조적인 것으로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로, 머리에 떠올랐을 뿐이다. 가족과 함께 살 때도 우시카와는 물론 고독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고, 남들 비슷하게 사는 그런 평범한 생활은 어차피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런 건 허망하게 무너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마음 속 깊이 생각했다. 변호사로서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 높은 수입, 주오린칸의 단독주택, 생김새가 나쁘지 않은 아내,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예쁜 두 딸, 혈통서 딸린 개.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가정이 어이없이 무너지고 자기 혼자 남겨졌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 푹 놓였을 정도다. 휴우, 이걸로 이제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거다, 라고.

이게 원점일까?

우시카와는 침낭 안에서 매미 유충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앉아 있었던 탓에 몸의 마디마디가 아팠다. 추위에 떨고, 저녁대신 차디찬 팥빵을 뜯어먹고, 철거직전의 싸구려 아파트 현관을 감시하고, 시원찮은 사람들의 모습을 몰래 촬영하고, 청소용 양동이에 소변을 본다. 그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일까. 그 순간 깜박 잊어버린 일이 생각났다. 그는 침낭에서 굼실굼실 기어 나와 양동이 안의 오줌을 변기에 쏟고, 덜렁거리는 레버를 눌러 물을 내렸다. 겨우겨우 따스해진 침낭에서 나오는 게 정말 싫어서 그냥 내버려둘까도 생각했지만, 어둠 속에서 자칫 발에 차이기라도 했다가는 큰일이다. 그러고는 침낭에 돌아와 다시 한동안 추위에 떨었다.

이게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더 이상 잃을 건 아무것도 없다. 내 목숨 외에는. 아주 간단하다. 어둠 속에서 우시카와는 얇은 칼날 같은 웃음을 지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III’
제13장 우시카와, 이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인가? 중에서…

다소 어둡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누구나 밝은 면이 있으면 동전의 양면처럼 우울한 면도 있기 마련이죠. 앞서 썼던 "심각해진다고 해서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과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 올려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분명 심각한 일이지만...니체와 셰익스피어에 나온 것처럼 "오늘 죽으면 내일은 다시 죽지 않아도 된다"는 명제도 있는 만큼 죽음 자체를 너무 두려워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후카에리의 그 눈을 보고 있으려니 갈비뼈 사이로 대바늘이 쑤시고 들어오는 듯한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졌다. 자신이라는 인간이 지독히 비뚤어지고 추한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다. 우시카와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실제로 지독히 비뚤어지고 추한 인간이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1Q84III’
제13장 우시카와, 그 눈은 오히려 가엾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에서…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오늘은 여기서 마치렵니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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